컴과 내 인생

조회 수 4944 추천 수 237 2003.09.24 13:42:06
웹 호스팅으로 전환하기 전, 회사의 제 서브 PC에서 홈피를 돌리던 시절에 쓴 글입니다.sql백업하다 날린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아직 있더군요.

2001년 3월에 작성했던 글입니다.지금 읽어보니 엄청 웃기는군요.푸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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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컴을 처음 만진건 초딩3학년때 87년도였다.당시 D모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 학교는 당시에 몇 없던 컴퓨터부를 갖고 있었다.
운좋게 컴퓨터부에 들어가서 처음 만진 pc는 spc1000이었다.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기억이 잘 난다한들 그 당시 무슨 cpu를 썼는지 알리가 없다.)z80 cpu를 사용하고 msx1을 원형으로 만든 모델이라고 알고 있다.화면에 글자가 찍히고 가끔 그래픽도 나오고 어쩌다 소리도 나는게 무척 신기했다.
베이직을 배웠는데 머리가 나빴는지 도무지 이해가 잘 안됐다.아니 들을땐 그런가보다 하는데 막상 프로그램을 내 손으로 짜보려고 하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우리 옆집에 살고있는 내 1년위 동네친구(물론 내가 형이라고 불렀다.)는 그 학교의 컴퓨터부 선수반(대회 전담용)이었는데 즉석에서 프로그램을 짜곤 했다.그게 그렇게 대단해보일수 없었다.흡사 나한텐 천재로 보였고 반면 난 바보인가 싶었다.

초딩 4학년때 최종적으로 졸업한 j모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여기에 있던 컴퓨터부에들어왔을때 신기한 pc를 보았다.그 이름도 찬란한 MSX.대부분 MSX1이었지만 MSX2도몇대 있었다.무려 256컬러나 되는 그래픽이 나오고 맑고 청아한 3중음(PSG음이 좀 깡통 두들기는 느낌이 나긴 하지만)...무엇보다도 팩을 꽂으면 겜이 돌아간다는 사실이놀라웠다.정말로 나한텐 컬쳐쇼크라 할만했다.사실 그 무렵 겜을 거의 처음 접했다해도 무리가 없었다.(재믹스가 MSX에서 키보드 뗀거였단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곳의 컴퓨터부 생활은 나에게 환상 그 자체였다.정말로 그렇게 재밌었던 적이 없었다.
당시 수업이 늦어도 2시반까진 끝났는데 수업 끝나면 무조건 컴퓨터실로 달려갔다.나름대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고 원체 컴을 좋아하는터라 선생하고도 친해졌고 선생도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편이라 , 몇몇 애들이 그룹을 이뤄 컴퓨터실에서 늦게까지 놀곤했다.그 당시엔 5시반 되면 학교 문을 잠궈버렸으므로 컴퓨터실에 5시까지 있었던건 꽤 늦게까지 버티는 편이었다.

PC를 갖고 싶었으나 그 당시 PC가격이 만만치 않았기(당시 평균소득에 비해서) 때문에 부모님께서 간단하게 사주실 순 없었다.(물론 철없이 열라 졸라댔다.당시 우리집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초딩 5학년때 처음으로 서울시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5명을 뽑아서 필기시험 준비를 했다.필기시험 예선,실기시험 예선,그 다음이 본선이었는데 5명 모두 필기에서 가볍게 떨어졌다.

반드시 관련이 있다고 볼 순 없었지만, 그때 5명중 나 혼자만 PC를 갖고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떨어진 원인을 PC를 갖고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나보다.
아버지는 꽤 맘 상해하셨고 첫 PC를 사주셨다. IBM-PC XT 조립품이었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2개,메모리 640KB, 말도 많고 사연도 많은 허큘리스 모노크롬 디스플레이를 내장한 pc였다.사양이 어떻고간에 정말 너무 좋았다.

프로그래밍보다도 주로 하고 싶었던건 그래픽이었다.Dr.HALO를 기억하는 이가 있는가?
난 그 툴을 교과서보다 많이 접했다.키보드로 열라게 점찍어가며 그림을 그렸다.모노 8패턴 만들어서 색칠도 하고 그랬다.곰곰 되돌아보면 내가 컴을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래픽때문이었다.어딘가 tv에서 본듯한데 허접하기 이를데 없는 라인으로만 이루어진 그래픽 화면을 보고 컴퓨터에 그렇게 매력을 느꼈나보다.

매일 밤새가며 점찍곤 했다.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것도 그 무렵이었다.

초딩 6학년이 되어 다시 서울시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5명 나가서 필기 예선은 나 포함2명 합격했다.그리고 실기시험이었는데 실기에서 떨어졌다.문제 4문제,시간은 4시간.
지금 보면 애들 장난이라고 하겠지만 그땐 진짜 어려웠다. 내 생각엔 지금의 정보처리기능사 실기 문제 수준쯤 되는거 같다.
꽤 실망했다.내가 별것도 아니란걸 깨닫기도 했고 역시 머리가 나빠서 프로그래밍은 못하겠단 생각도 들었다.그래픽에 대한 관심만 더 커져갔다.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turbo c를 구해다가 c언어를 시작했다.신기하긴 한데 당시 나한텐 너무 어려웠다.특히나..그놈의 배열이 왜 그리 헷갈리던지..보통은 포인터가 어렵다고 하는데 난 그 당시에 포인터 근처도 못갔다.가장 좌절했던건 1부터 1000까지 합을 구했는데 500500이 안나오고 이상한 값이 나오는거였다.아무리 봐도..로직상엔 문제가 없는데 500500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그 문제로 한참을 고민하다 c언어를 접었다.그리고 프로그래밍은 포기하기로 했다.(왜 500500이 안나왔는지 여러분은 짐작을 하는가? 당시엔 int형이 16비트였다. 즉 양으로 32767까지만 표현이 가능하다.500500이 표현되었을리가 없다.)

중학교때부터 고3때까지 그래픽만 뽀지게 했다.참 그렇게 죽도록 했는데도 실력이 이 수준인걸 보면 소질이 웬간히 없었나보다. 딴건 몰라도 점찍기 하나는 자신있었다.
해본 사람도 꽤 될것이다.만화책같은거 위에다가 셀로판지 대고 펜으로 샤샥 따라그린다.
그거 모니터에 붙이고 따라그리는 것이다.난 이미 초딩때부터 그 짓을 했다.(그 덕에 눈이 병신됐다.-_-;)

빼먹은 얘기가 있는데 중학교땐 주로 msx를 갖고 놀았다.나한테 msx는 처음 pc의 멀티미디어 환경에의 가능성을 보여준 pc였다.나의 구질구질한 xt는 그래픽,사운드 기능이 도무지 형편없었고 그래픽을 너무나 하고 싶었던 나한텐 불만요소였다.어떻게 어떻게 돈을 모아서 msx2+ 중고를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진짜로 열라 행복했다.
그래프 소러스로 그림 그리고 mgsel로 음악 돌리고 환상이었다.각종 겜도 하고..나름대로 꽁수도 알아내서 게시판에 올리고 그랬다.내 평생 가장 잊지 못할 기종은 바로 msx이다.

아참.중학교때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으니 중2때 kortel에 가입한 것이었다.ketel이 막 유료화되는 시점에 ketel을 쓰기 시작했는데 가입할 당시엔 kortel이 되어있었다.모르는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ketel->kortel->hitel이 되었다.
ktmail이란 통신서비스도 있었는데 당시 그 열악한 환경에서 '낯선 그림'들의 보고였다.
여튼...동호회 가입해서 활동하고 그 당시엔 별 짓 다하고 다녔다.서바이벌 한다고 용마산,관악산 돌아다니기도 하고 하이텔 애니동의 '만저사(만화를 저주하는 사람들)'란 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갖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내 인생의 가장 변화가 심했던 시기였다.
해킹이니 그런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감회가 새롭다.내가 msx용 프린세스 메이커 하려고 친구한테 32mb mfm하드 디스크 빌려다가 내 xt에 꽂고 8시간동안 3.5" 디스켓 7장 분량을 다운받아 그걸 5.25" 디스켓 14장으로 짤라서 용산의 하이텔 플라자 가서 다시 하드에 풀었다가 updown이란 프로그래으로 3.5" 디스켓 7장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프린세스 메이커를 msx에서 돌려서 엔딩 보고 눈물이 다 났다.
내 모뎀은 227cps가 최고속도였는데 mnp기능이 지원되는 모뎀은 무려 270cps나 나왔다.
지금 이런 얘기하면 상상도 안되겠지만 그땐 그랬다.그나마 그전엔 1200bps모뎀 빌려썼으므로 2400bps모뎀도 놀라울 뿐이었다.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보자.
고3때까지만 해도 주로 점찍기를 했다.가끔 벡터 드로잉도 했다.중1때 코렐드로우란걸 잡지에서 처음 봤는데 나한텐 그림의 떡이었다.내가 컬러그래픽이 되는 386 pc를 갖게 된게
중학교 3학년때였으니 말이다.너무 코렐드로우를 쓰고 싶어서 386 사자마자 코렐드로우부
터 깔았다.(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인스톨에만 4시간 걸렸다.램이 적어서 그랬던거 같다.)
열라 버벅댔지만 돌아가는거 자체에 흐뭇해하며 조금씩 벡터드로잉을 해나갔다.

고3때 수능 딱 끝나고부턴 벡터 그래픽만 열라 파기 시작했다.뭐 특별난 미술 테크닉은 없는지라 열라 노가다로 떼웠다.난 만화를 좋아했으므로 게임 캐릭터나 직접 그림 만화캐릭터 따위를 벡터 그래픽으로 그렸다.이 홈에 있는 pbunny.jpg란 그림을 보신 분이 계신가?
오브젝트 3000여개로 이루어진 그림인데 내 pc로는 도저히 작업 불능이었기 때문에 머리,
몸통,다리 3부분으로 나눠서 따로 그린후에 최종적으로 합성한 그림이다.(당시 사양은 386에 램 8메가, 코렐드로우 5.0이다.)스와핑이 장난 아닌지라 단지 3부분을 합치는데만도 2시간 반이 걸렸다.

어찌어찌 대학에 들어와서 인터넷을 처음 접했다.뭐 그리 생소하던지...
병특도 해야겠고 여러가지 해야할게 많았다.겜 그래픽 디자이너로 병특할 생각을 하고 이것저것 했다.3D모델링도 했는데 그걸로 삼성 멤버쉽 찔렀다가 떨어졌다.생각해보면 대학교 2학년때 프로그래머로 처음 취업에 성공할때까진 자신감 바닥이었다.
그래픽으로 알바를 하려고 돌아다녀봐도 마땅히 되는 곳이 없었다.절망했다.머리나빠 프로그래밍도 포기했는데 그래픽도 안되면 뭘 한단 말인가.대학 1학년 여름에 지금의 하이텔 게제동의 장세용(MANToMAN)님이 겜을 만드는데 그래픽이 필요하다고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했다.겜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기로 하고 아주 약간 일을 도왔다.실상 내가 한 일은 거의 없었다.dech란 게임이었는데 게임파티 97에서 일단 입상은 했다.자세한 얘긴 별로 쓰고싶지 않다.하여간 그 이후로 프로그래밍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그래픽
데이타만 만들어가지곤 내 손으로 움직이게 할 방법이 없었다.답답했다.
나에겐 자유가 필요했고 창조를 할 수 있는 지팡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키보드를 지팡이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97년 가을, 다이렉트 X 3.0,win32 api프로 그래밍을 시작했다.

첫 프로젝트는 퍼즐다마를 만드는 것이었다.퍼즐다마는 뿌요뿌요와 비슷한데 조금 더 임팩트하다.76연타 정도까지 봤다.원체 재밌게 한 겜이라 그걸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제 작업은 97년 11월부터 시작했다.몇날 몇일 밤을 새곤 했다.그그땐 마냥 재밌었다.다행히 생각보다 진전속도가 빨랐고 98년 3월에 첫 게임을 만들었다. 퍼즐다마.

다음 목표는 3D프로그래밍으로 잡았다.난 버추어 파이터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그만큼 3D게임을 좋아했다.3D겜을 만들면 좋겠지만 그건 내 수준으론 무리라고 생각했고 그저 내가 모델링한 3D걸을 화면에서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98년 11월까진 그걸 해내고 말겠다고 결심을 했다.다행히 생각보다 진전이 빨랐다.98년 9월경에는 뜻하지 않게 h모사의 병특 프로그래머로 지원하여 합격했다.
3ds파일과 vue를 이용한 3D애니메이션 데모를 포트폴리오로 제출했는데 그 회사에서 나쁘지 않게 본 모양이었다.
신의 도우심으로 자격증 문제가 걸려서 난 출근한번 못해보고 도중하차했다.이미 휴학을 해놓은 상태라서 거의 반년 놀면서 프로그래밍 뽀지게 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찔러넣었다.
참으로 암담하던 시절이었다.마침 imf네 뭐네 해서 사회분위기 썰렁했다.
지금의 내 직장.그러니까 구 하이콤에 면접을 본것은 98년 말이었다.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고 to가 나올지 안나올지도 모르겠다 해서 잊은채로 99년에 3학년 1학기로 월반 복학했다.
5월경에 하이콤에서 출근할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소프트 맥스에 이력서하고 포트폴리오 낸게 1차 전형에서 합격한 상태였기 때문에 약간 망설여졌다. 사실 소프트맥스가 메이저급 회사였으므로 그때 면접에서 붙었더라면 지금의 직장에선 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맥에서 면접본건 떨어졌고 미련없이 하이콤에 입사했다.
그 다음은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해서...당초 하고 싶었던 3D프로그래밍은 회사일로는 결국 할 수 없었지만 현재는 또 다른 분야에서 나름대로 밥값을 하고 있다.
써놓고 보니 참 길다...
원래 제대로 쓰면 이거 세배는 나올텐데..자서전을 써도 되겠다.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뭐.어차피 이건 나중에 익스포트 해서 내 일기장db를 구축할거니 안읽어도 상관없다.

고3때 장래희망란에다가 얼떨결에 '프로그래머'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정말로 프로그래머가 될줄은 몰랐다.(뭐 나중에 딴 일을 할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세상 일 참 우습게 풀린단 생각도 든다.

새벽 5시 반이 다 되어간다.새벽만 되면 센치해져서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러다보니 글도 쓰게 되고 그런다.생각나면 또 쓰고 이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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