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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스컬럼] 이소프넷의 추억

조회 수 4403 추천 수 133 2004.11.17 03:41:26
이소프넷 아니 하이콤에 입사한지 만 5년 4개월하고 보름이 지났다.

내가 6년차라고 글 써놨더니 어떤 이가 밑에다가 ‘자네나 잘하시구랴 6년차’ 따위의 기분나쁜 말을 써놨던데. 경력이 얼마 됐냐를 말하고싶은게 아니고 내 20대 청춘을 이 회사에서 다 보냈단걸 말하고 싶은거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인데 내친 김에 과거를 회상해볼까 한다.

내가 입사했을때는 하이콤이 부도를 냈다가 하이콤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꿔 재기할 무렵이었다.

꿈에 그리던 게임 회사의 프로그래머...

첫 업무는 당시 개발중이던 코룸외전에 미니게임 4개를 만들어넣는것.그 당시에 생각하기에도 미니게임은 불필요한 요소였다. 신참직원에게 일을 시키려고 굳이 넣을 필요없는걸 넣었달까.그런 느낌이었다.

뭐 아무튼...
그 때 처음으로 최봉원씨랑 같이 일을 하게 됐다. 그래픽 데이타를 하도 안줘서 매일 독촉하러 다닌 기억이 난다. 심지어 스케쥴 표에다가 '봉원씨한테 데이타 받아내기'라고 쓰기도 했다.물론 그렇게 장난 스러운 분위기가 통하는 개발실이었다. 비록 데이터를 제때 주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인가 아침나절 잠깐 일하고는 그래픽 데이타를 icq로 마구 날려왔다. 오 과연...개발팀장이 칭찬하더니만 놀라운 스피드에 놀라운 퀄리티.

게임 내용에 그다지 중요치 않은 미니게임이었지만 어쨌든 4개를 모두 만들어냈고, 캐릭터 프로그래밍 작업에 추가 투입됐다. 상당히 두려웠지만 그럭저럭 맡은 작업을 해냈고, 덕택에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두 번이나 나올수 있었다.(미니게임 제작, 캐릭터 프로그래밍)

비록 첫 타이틀인 코룸 외전은 망했지만서도....  처음 엔딩 동영상을 시연하던 날 진짜로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나오는걸 보고 내심 얼마나 감격했던지... 그 기분을 잊을수 없다.

당시 미니게임 4개중 타자게임과 슬롯머신 두개에는 치트키를 넣어놨었다. 슬롯머신의 치트키는 방향키를  [좌좌상상우우하하] 누르는거였다. 이걸 해두면 슬롯머신이 정지한 후에 임의로 통을 돌려서 원하는 수로 맞출 수 있었다. 타자겜은 치트 입력하면 게임 방식이 변하던가 뭔가 그랬는데 키가 생각이 안난다. 게임이 뜨면 pc통신망에 치트키를 공개해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럴 날은 오지 않았다.슬프게도...

2000년에 접어들면서 하이콤 엔터테인먼트와 FEW가 합병하여 esofnet이라는 새로운 법인이 만들어졌다. 개발실은 softop이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브랜드명을 사용했었으나, 2000년 중반에 가면서 esofnet으로 통합됐다. 합병하면서 상당히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기존 하이콤 직원들은 대부분 회사를 떠났다. 이 때가 힘들었던 시기였다. 회사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잡힐때까진 정말 매일매일이 죽을 맛이었다. 병특 신분에 이직 가능 기간도 못채웠기 때문에 회사를 나갈 수도 없었다.
뭐 2000년도에 힘들었던 얘기는 이전에도 한번 쓴적이 있으니 길게 쓰지 않겠다.

사실 코룸외전 개발할 당시만 해도 성택씨랑 그렇게 친하진 않았던거 같다. 2000년도 힘들던 시기에 전우 성택씨랑 서로 의지하다보니 그때 많이 친해졌다. 당세 성택씨로부터 날라오는 icq 메시지의 첫 마디는 늘

‘쉬파’

였다. ‘쉬파...망할놈의 회사’ 늘 이런 패턴. 그렇게 서로 푸념을 늘어놓으며 2000년 중반까지 버텼다.

2000년 여름, 신이 날 버리지 않으셨는지 마치 영화의 대본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난 프로젝트 팀에서 빠져나와 R&D 비슷한 부서로 빠지게 되었다. 바로 서버팀 창설.

정확히는 서버 개발팀. 팀장은 입사당시 사수였던 성준씨. 난 서버팀의 메인 프로그래머.그리고 오지원씨와 이동찬씨가 합류하게 된다. 그 시절은 정말로 열심히 했다. 비록 아는건 없었지만 내 의지에 의해서 새벽까지 원서와 씨름하고 집까지 걸어가며 생각하고 아침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코딩했다. 이소프넷 시절을 통틀어 가장 즐겁고 뿌듯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동찬씨가 처음 들어왔을때 이런 일도 있었다. 이 사람이 원래 유닉스 프로그래밍하던 사람이라 VC++ 툴 사용법엔 익숙지가 못했다. 그래서 브레이크 포인트 찍을때 메뉴에서 클릭해서 찍고 있었다. 그걸 보고 뒤에서 내가 말했다.

‘이 사람 짜르죠? 브레이크 포인트 핫키도 모르다니...’

당시엔 여럿 웃었지만 어쩌면 상처받았을지도...

내가 첨 입사했을때 내 등 뒤에서 차중훈씨(일명 차차)가 이렇게 말했었다.

‘이 사람 짜르죠? 핫키도 모르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본 농담이었다. 뭐 여튼 그땐 재밌었다.

2001년도엔 여차저차하여 3D엔진 일을 맡게 되었다. 엔진을 사서 고치든지 만들던지 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때마침 봉원씨가 재입사했다. 이것이 게임솔루션팀의 창설이었다.
동찬씨와 지원씨는 게임솔루션팀 산하의 서버 파트.
나와 새로 입사한 이진영씨는 3D엔진 파트,
그리고 봉원씨와 성택씨가 엔진 평가팀이란 헤괴한 이름의 팀으로 뭉쳤다.

우리는 얼마간의 고민끝에 3D엔진을 자체 제작한다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그리고 엔진개발을 위해 샘플 게임도 함께 제작하기로 했다. 그 게임의 기획과 그래픽은 각각 성택씨와 봉원씨가 맡는다. 게임의 메인 프로그래머는 없었다.
나와 진영씨는 지금의 SS3D엔진을 만들기 시작했고 아울러 게임비슷한 모습을 갖춘 간단한 프로토타입 클라이언트와 모델뷰어, 맵툴등을 만들었다.

2001년도 말에 엔진 PT와 게임 기획 PT를 통해서 코드명 '코룸제로'로 알려진 샘플게임은 실질적인 정식 프로젝트로 승인받았다. 게임의 이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안이 있었고 말이 많았으나 최종적으로는 코룸 온라인으로 결정됐다.

2002년도 3월경 내 휘문고 동창인 구병수군이 라자팀에서 게임솔루션 팀으로 옮겨왔다. 아니 정확히는 그 시점에서 코룸팀이 생겼다고 봐야겠지.

병수는 혼자서 열심히 일했고 2002년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꽤 게임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그 당시까지 코룸에 투입된 인원이라고는 기획자에 성택씨, 그래픽에 봉원씨 한명, 게임 프로그래머에 병수 한명, 그리고 엔진 제작에 나와 진영씨 둘 뿐이었다. 2002년 가을이 되어서야 인원충원이 시작됐다.

2002년엔 다시 시작하는 묵향 프로젝트에서도 SS3D엔진을 사용하게 됐다. 참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지금에 와선 미안한 감정이 많다.  ‘좀 더 잘 서포트 할 수 있었으텐데..’ 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 때 내 능력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2000년도에 서버에 집중하던 이상으로 모든 정신은 3D엔진에 집중하고 있었고 자정 전에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이들도 많았을텐데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묵향팀에 특별히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단지 내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2002년 가을에 김영상씨와 장지용씨가 합류했다. 처음 영상씨의 이력서를 받았을때 낚시가 취미고 어쩌고 써 있길래 얼마나 웃었던지... 별난 인간 다 보겠다고 생각했다.
영상씨 면접을 볼땐 나도 들어갔었는데 첫 인상에 나이가 서른은 되어보였다. 시간 지나고 보니 그냥 원래 그 나이로 보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땐 엄청 노티나게 입고 왔었다.
이소프넷이 그렇게 메리트 있는 회사는 아니었는데도 그때까지 진행된 코룸이 맘에 들었던지 영상씨는 코룸팀에 합류했다.

지용씨를 처음 봤을땐 상당히 점잖아보였다. 워크샵 갈 때 지용씨 차를 타게 됐는데 내심 ‘아 이런 따분해보이는 사람과 같은 차를 타다니..재미없겠군’ 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물론 몇 달 뒤에는 전혀 그 반대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나와 진영씨는 R&D부서였고 코룸팀이나 묵향팀이나 어느쪽과도 분리된 부서였지만 코룸이 SS3D엔진의 샘플게임이었던 탓에, 또 과거 친분있던 사람들이 많은 탓에, 같은 4층에서 일했던 탓에 더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코룸에 대해서 조금쯤은 더 신경을 많이 썼던게 사실이었고 성공하지 못한 것에 코룸팀 사람들만큼이나 안타까워했다.

코룸이 클로즈 베타를 시작했을때, 오픈베타를 시작했을때,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을때 유져들은 온갖 비난을 퍼부어댔지만... 능력이야 어쨌건 개발자들은 최선을 다했다.
문제가 있었음에도 오픈을 해야했던 건 당시로선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의 재정상태는 심각하게 악화되어있었고, 어떻게든 실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오픈을 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사실상 개발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경영자들도 버티기 힘들었겠지. 당시 상황으로만 보면 꼭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었다.

2004년에 접어들어 힘든 상황들이 계속 됐다. 뭐..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다. 결과적으로 각 프로젝트 팀들은 다른 회사로의 매각, 또는 분사했다.

왜 이소프넷이 씁쓸하게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는가에 대해서는 다들 이러쿵 저러쿵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코룸 때문에 이소프넷이 무너진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룸 최종매각으로 벌어들인 수익까지, 적어도 본전을 웃도는 돈은 벌어들였으니까.

2004년 9월 30일자로 관리직원 두명 빼고 이소프넷 직원들은 전원 일괄 퇴사처리됐다. 다른 사업부들은 매각이나 분사로 결정됐지만 우리 R&D는 확실한게 없었다. 사전에 말은 있었지만...어떤 계획을 말해도 믿을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9월 30일 이후로는 당장 팀원들이 모일 장소조차 없었다.

지용씨와 사업부장 성준씨의 주선으로 우리들 R&D 팀원들은 일단 코룸사업부를 매입한 N모 소프트의 사무실에 자리를 얻게됐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계획도 있었지만 일단 돈이 걸려있는 부분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답답한 몇 주간이었지만 그래도 같이 일했던 코룸사업부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에 딱히 이소프넷과 결별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미 일괄 퇴사처리된 다음인데도 말이다.

계획대로 우리 팀 네명은 따로 떨어져 독립하게 되었고 이제 얹혀지내던 코룸 사업부에서 떠나게 됐다. 최근까지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일까, 이소프넷의 마지막 명맥이라고 느끼던 곳이 이 곳이었는데...

몇 주간 빌려쓰던 코룸 사업부의 내 자리를 정리하고 짐 싸놓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눈물이 날 뻔 했다. 내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회사와 사람들, 이젠 진짜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어찌나 아쉽던지... 웃고 떠들고 싸우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릴적 12년이나 살던 집을 떠나 지금의 집으로 이사올때도 많이 아쉬웠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뭐 좁은 바닥이니 같이 일할 날이 또 오겠지. 성공한 모습으로 다시 함께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감상이나 몇 마디 적을까 하다가 잊혀지기 전에 기억들을 기록에 남기는게 좋을것 같아 장황하게 적어봤다.
휴....

나도 파이팅, 우리도 파이팅, 당신들도 파이팅 하시길.....


댓글 '10'

쉐용

2004.11.19 02:17:41
*.151.131.148

파이팅 입니다. 정말 잘되시길 빌겠습니다.

여치

2004.11.19 02:56:55
*.212.98.112

오 세용님이시군요.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언제 이 업계 78들 함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네요.

서재형

2004.11.19 15:46:03
*.52.215.108

만감이 교차하겠네요. 기운내시고, 다시 질주를~~ ^^ (쉐용스 잘지내나... ==;;)

게임초보

2004.11.20 22:59:30
*.51.87.157

학창시절 게임 수집에 즐거움을 느끼던 저는 CD-ROM 드라이브 보급초기에는 수입게임도 많이 구매하는 매니아였습니다.
복사가 횡횡하고 와레즈가 넘치게 된후 "정품을 사는 것이 멍청한 짓"이라는 가슴을 아프게하는 비아냥만 없었더라면
코룸시리즈도 정품패키지로 많이 샀을 것입니다. 그래서 게임 번들잡지를 사게 하는 최고의 게임이었습니다.
일종의 신경전이라고 할까요? 멋진 게임이 번들로 안나오면 결국에는 사고 말았지요. 하지만 너무나 빨리 나와버리면
잡지에 번들된 것을 사게 되었습니다. 외국도 초고속 인터넷이 많이 발전하게 되면 결국 우리나라 같이 패키지 시장이 죽어버릴 가능성이 많겠지요. 제가 97년도에 유럽에 가본적이 있는 데 사이베리아라는 도스용 슈팅게임을 잡지 번들로 주더군요. (유럽은 국가간 왕래가 쉬워서 잡지도 다국적입니다. 독일어로 된 게임 잡지를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같이 보고 5개국어 정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흔합니다.) 요즘 용산에 가보면 콘솔판매업자들이 XBOX에 하드를 달고 게임을 수백개씩 깔아서 팔고 있지요. 게임을 팔아서 먹고 사는 소매상들이 저정도라면 볼 장 다 본것입니다. 온라인 게임으로 성공하시길..

zapwand

2004.11.22 12:21:15
*.148.219.246

항상 일하다가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 슬픈마음이 들지요 뭐랄까 전쟁터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후퇴하는 느낌이 든달까......하지만 자기가 사장이 아닌이상 그런감정에 너무 사로잡히면 더 힘들어 지게되서 조심해야 하는데.....암튼 새로운 출발 하신거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세상은 6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게임계는 그보다 더 좁아서 아마 한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분들일듯.......

제노

2004.11.24 21:55:36
*.96.211.176

쩝... 추억이 되었구나.. 그러고보니.. 나도 처음으로 사회생활 시작한게.. 하이콤 알바 였는데.. ㅋㅋ
마지막 순간까지 있어주지 못하고.. 중간에 뛰쳐나와(?)버렸지만 --;
아무튼 소식듣고 나도 마음이 좀 허전해지더라..

배현직

2004.11.26 00:35:01
*.188.112.110

파란만장 그 자체입니다.
서로 술한잔하면서 이 얘기를 주고받아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코룸팀과 N사에 관한 얘기는 제 동생한테서 예전에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 동생이 코룸온라인 글픽에도 손댔는데, 어쩌면 N사에서 제 동생과 또 같은 프로젝트를 하게 되는거 아닐까요? ^^;;;

전우

2004.12.02 23:59:32
*.49.31.109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린 전우.. -_-;;;

쫍...

최봉원

2005.01.20 23:45:28
*.70.90.115

허허 회고록이로다... 쩝쩝.. 에휴~~~ 그나저나 전우님은 누구시지^^

슬로보트님

2005.01.31 21:38:24
*.153.172.100

새삼스럽구만..지금 보니...그 여치가 만들었덴 레이 얼굴 내려오는 베네치아 게임이 문득 생각나는구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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